색을 비우고 깊이를 채우다(4) 블랙 볼륨 안에 숨겨 둔 휴식의 레이어 - Indústria A10 (2026.02)

블랙 볼륨 안에 숨겨 둔 휴식의 레이어

Indústria A10


인두스트리아 A10은 기존 산업 창고를 공장 노동자들의 일과 휴식을 위한 복합 사회 공간으로 전환한 프로젝트로 산업 건축의 기억을 현재의 사용 방식 속에 세심하게 보존한 점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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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 BOX arquitectos

Location / 아조레스, 포르투갈

Area / 350㎡


프로젝트는 포르투갈 아조레스에 위치한 농·식품 기업 피난소르(FINANÇOR– agro‑alimentar, S.A.)를 위해 진행되었으며, 회사의 생산 인프라 안에 새로운 커뮤니티 허브를 삽입하는 작업이다. 이 공간의 프로그램은 매우 구체적이면서도 일상의 리듬을 따라 배열되어 있다. 행정 업무를 담당하는 사무·관리 영역과 상담 및 진료를 위한 의료실, 식사와 휴식을 위한 구내식당과 라운지, 그리고 샤워 시설까지, 공장 노동자들이 근무 전·중·후에 필요한 기능들이 한데 모여 있다. 이러한 기능들은 단지 한 공간에 모여 있는 것이 아니라, 입구 쪽의 행정·관리 영역에서 시작해 점차 사교적이고 비공식적인 휴게·식사 공간으로 이어지는 순차적인 구조를 이루며, 사용자의 동선과 하루의 흐름에 자연스럽게 대응한다.

932ecc44b2347.jpeg처음 이 창고는 단일한 거대한 행어(Hangar), 즉 비행기를 수용할 수 있을 만큼 높고 넓은 하나의 커다란 실내 볼륨으로 존재했다. 프로젝트를 진행한 박스 아키텍토스(BOX arquitectos)는 이 압도적인 스케일을 숨기기보다 오히려 그대로 드러내기를 선택했다. 그래서 새로운 프로그램을 위한 모든 방과 구획은 ‘벽을 세워 나누는 방’이라기보다 넓은 내부에 ‘배치되고 놓인 개별 박스’처럼 다루어진다. 디자이너가 이 볼륨 안에 놓인 기능 박스들을 ‘운송 컨테이너(Transportation Containers)’에 비유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컨테이너가 항만에 일시적으로 적치되어 있다가 다시 이동하듯 박스들은 거대한 산업 공간 속에 잠시 머무르는 단위들처럼 인지된다.0eeeff6bc8690.jpeg7be06f04dab2e.jpeg

이때 중요한 점은 기능 박스들이 창고 전체 높이를 가득 채우지 않는다는 것이다. 행정실, 의료실, 식당, 샤워실 등은 모두 하부 영역을 점유하는 규모로만 계획되어 있고, 그 위로는 비워진 상부 공간과 기존의 구조 프레임이 그대로 노출된다. 이로써 시선은 언제나 박스 위로 이어져 골조, 트러스, 기둥 등 본래 창고가 가진 구조적 뼈대를 읽게 되며, 결과적으로 새로 삽입된 프로그램과 기존 산업 구조가 동시에 인식되는 다층적 공간 경험이 형성된다.edf9dbdf0c463.jpeg8c6e68e3a5497.jpeg5dc80bca8bf13.jpeg94d0abc375bbd.jpeg

프로젝트가 강조하는 ‘산업의 기억’은 바로 이 지점에서 구체화된다. 과거에는 팔레트와 상품, 기계가 채웠을 법한 공간 안에 이제는 사람을 위한 컨테이너들이 놓이고, 물류가 아닌 휴식과 회복, 행정과 의료가 이루어지는 장면이 펼쳐진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여전히 원래의 창고 구조와 스케일은 가려지지 않고, 마치 부두에 정렬된 컨테이너 더미처럼 박스들이 놓여 있어 산업적 풍경의 잔상이 계속해서 떠오른다.2df073cde376b.jpega3735deacc9c2.jpeg

새로 만들어진 행정실이나 휴게 공간은 그 자체로 현대적이고 기능적인 인테리어를 갖추지만, 한 걸음 물러서서 보면 여전히 하나의 ‘거대한 창고 안의 임시 구조물’처럼 읽힌다. 과거를 장식처럼 차용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건축의 물리적·정서적 레이어를 현재 프로그램의 배경으로 존중하며 남겨두려는 시도다. 디자이너는 영구적으로 서 있는 기존 창고 구조와 그 안에 임시로 들어온 듯한 컨테이너형 박스들, 산업 생산을 상징하는 공간성과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행정·의료·복지 같은 사회적 기능, 기계와 제품을 위한 공간이었던 장소가 이제 노동자의 휴식과 회복을 위한 공간이 된 상황 사이에 놓인 긴장감을 의도적으로 드러냈다. 이런 상반된 요소들이 동시에 느껴지도록 함으로써 인두스트리아 A10이 오래된 건물을 새로 고친 리노베이션에 그치지 않고, 산업 창고가 지닌 과거의 기억을 현재 사용 방식 속에서 계속 살아 움직이게 하는 매개 장치가 되도록 한 것이다.80c163bc595f1.jpeg2938ee17be03d.jpegA10은 과거 산업 공간의 스케일과 구조를 그대로 체감하게 하면서도 그 안에 공장 노동자의 건강과 복지, 그리고 일상적인 교류를 위한 프로그램을 세밀하게 심어 넣은 프로젝트다. 거대한 행어형 볼륨은 투박한 외피로 남고, 그 내부에는 컨테이너 같은 박스들이 한층 낮게 쌓여 새로운 삶의 장면을 담는다. 생산 설비와 나란히 놓인 이 사회 공간은 산업이 다루는 ‘제품’ 뒤에 있는 ‘사람’의 시간을 위한 별도의 항구처럼 기능하며, 산업 건축 재생의 한 가지 설득력 있는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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