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y Again, Bon Voyage
다시 떠나는 여행
취재 한성옥, 최지은
여행이 돌아왔다.
여행을 잃어버린 동안 우리는 단 한 번도 여행을 잊지 않고 그리워하며 언젠가 다시 떠날 날을 상상했다.
스스로를 위로하고 정화하는 시간이든 낯선 사람을 만나며 나의 세상을 확장하는 시간이든, 오랜 기다림 끝의 여행은 마음으로 그리던 여행 그대로여야 할 것이다.
꿈꾸던 여행의 마중물이 되어줄 공간을 살펴보며 다시 떠날 준비를 해보자.
낭만과 설렘 대신 안전을 택할 수밖에 없던 지난 몇 년, 우리가 마음 놓고 떠날 수 있는 여행은 랜선 여행 정도였다. 매일 잠드는 침대에 그대로 누워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화면 너머 간접적으로만 접할 수 있던 먼 곳의 풍경. 때로는 선뜻 찾아가기 힘든 지역조차 쉽고 편하게 즐길 수 있어 흥미롭기도 했지만 결국 영상이 모두 끝난 뒤 남는 건 진짜 여행을 향한 갈망뿐이었다. 평소와 전혀 다른 경치뿐 아니라 바람결과 향기 등 오감으로 느끼는 그곳만의 분위기, 두 발로 골목길을 누비며 그리는 나만의 경로, 우연히 만난 사람과의 대화처럼 직접 떠날 때만 누릴 수 있는 여행의 묘미가 있는 것이다. 팬데믹이라는 초유의 사태 속에서 일상만큼이나 애타게 고대하던 여행. 코로나19가 엔데믹화 수순에 접어들면서 출입국 시 자가격리가 면제되고 입국 제한 조치도 풀려 드디어 여행이 본격적으로 재개되고 있다. 홈쇼핑 방송에서는 고가의 프리미엄 해외 여행 상품이 연일 매진을 기록하고 여행사들은 3년 만에 정기 공채를 진행하거나 여행 전문 브랜드를 새롭게 론칭하며 지역마다 각종 대면 행사를 추진하는 등 여행 업계 전반에 활기가 도는 중이다. 여름 휴가철이 다가오면서 여행에 대한 기대감은 점점 고조되는데, 설령 바로 떠나지는 못한다 해도 여행을 계획하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일상의 공기가 산뜻해지는 기분이다.그동안 그리워하던 여행을 생각해본다. 이국에서 현지인과 소통하고 새로운 문화를 경험하는 시간, 광활한 바다나 깊은 숲을 온전히 마주하며 어지러운 삶을 가다듬는 시간, 낯선 세계에서 영감을 얻고 창의성을 고취하는 시간. 사람들의 성향이나 가치관에 따라 여행의 방식도 천차만별이고 여행이 삶에 주는 의미도 달라진다. 그리고 한 사람의 여행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바로 숙소이다. 호텔, 스테이, 호스텔, 게스트 하우스, 에어비앤비 등 어떤 숙소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여행의 지향점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각각의 숙소마다 단순히 조식, 독립적으로 쉴 공간 등을 제공하는 단계를 넘어 고유의 특색을 추구하고 있어 숙소를 보면 그 사람이 꿈꾸는 여행은 물론이고, 더 나아가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과 가치까지 알 수 있다. 호텔은 호화로운 시설과 환대를 넘어 공용 공간을 넉넉히 마련하고 지역민이 일상적으로 드나들 수 있는 구역을 연계해 커뮤니티를 극대화하거나 집과 유사한 환경을 유지하면서 감각적인 디자인을 품어 일상의 흐름을 색다르게 이어간다. 독립성이 강조되는 스테이도 자연 깊은 곳에 자리하되 쉼을 향유할 수 있는 다양한 시설을 품거나 취향이 또렷한 누군가의 집처럼 꾸며 다른 사람의 일상을 살아보는 듯한 경험을 선사하며 여행의 의미를 심화한다. 여행의 다채로운 결을 풍부하게 머금은 숙소에서 꿈꾸던 여행이 현실이 된다.
patina maldives
Architecture / studio mk27
Interior Design / studio mk27
Landscape Design / Vladimir Djurovic Landscape Architects
Location / Maldives
Area / 34,500㎡
Photograph / Fernando Guerra, George Roske
때때로 사람들은 진정한 나를 찾고 싶어 한다. 물론 ‘나’ 는 지금 이곳에 존재하지만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활동, 사회적 제약, 필요에 의한 관계에 얽매여 살다 보면 자신의 진짜 모습이 발현되기 힘들기 때문이다. 여행의 의의 중 하나는 속박에서 벗어나 자신의 내면을 만나는 기회가 된다는 점이 아닐까. 특히 문명과 단절된 듯 푸르게 존재하는 숲과 바다는 자연을 향한 여행이기도 하지만 나 자신을 마주하는 여행이 되기도 한다. 태초의 모습을 간직한 자연 속에서 본연의 나를 찾고 해방감과 내적 충만감을 만끽할 수 있는 것이다. 이에 심원한 자연 깊숙이 들어가는 숙소가 등장하는데, 유적한 산속에 침대 하나만 두거나 절벽에 매달린 숙소, 해저 호텔 등 실험적인 시도까지 나타난다. 다만 일반적 여행에서는 안락함과 자연을 모두 누리게 하는 시도가 주를 이루며 숲속에 침실과 욕실 등을 갖춘 독채 숙소를 배치하면서 전면을 투명 소재로 덮거나 내외부의 경계를 흐려 풍경속으로 뛰어드는 듯한 감각을 선사하고 원시림을 탐방하거나 야생동물을 관찰하는 프로그램 등을 제안한다. 자연 속에서 내면을 들여다보는 명상 프로그램을 준비하거나 순수한 마음으로 타인과 진정한 소통을 꾀하는 상호 교류 환경을 조성해 본연의 나로 세상과 다시 관계 맺도록 이끈다.
천혜의 자연 환경을 지닌 몰디브. 그 안에서도 외진 곳에 자리해 청정한 자연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Fari 군도에 patina maldives가 살며시 깃들었다. patina maldives는 문명을 벗어나 자연을 깊이 느끼도록 계획한 리조트로 섬 둘레를 따라 시설을 넓게 퍼뜨리면서 높이를 낮춰 수평선 등 풍경을 해치지 않도록 하고 건물 내외부의 경계를 흐려 시야를 열었다. 방문객은 울창한 초목 사이를 거닐거나 아득히 펼쳐지는 바다를 보며 자연과 교감하고, 그 시간 속에서 사회적 굴레를 벗어나 자신의 본 모습을 찾게 된다. 더 나아가 자연에서의 시간을 고립으로만 정의하지 않고 순수한 인간성을 되찾은 채 타인과 연결되도록 교류를 촉진하는 시설에 힘을 실은 점이 돋보인다. 섬으로 들어오는 선착장 오른쪽에 공용 공간인 Fari Marina Village를 배치했는데 이곳은 Fari Beach Club을 비롯해 베이커리나 철판 요리집 등 다양한 식음 공간, 꽃집, 상점, 스포츠 클럽, 갤러리까지 다채로운 시설로 구성돼 리조트를 하나의 마을처럼 묶으며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릴 기회를 만들어준다. 선착장 왼쪽에 위치한 본관 역시 리셉션 로비 역할을 하는 Arrival Green House, 식음 공간, 퍼걸러, 수영장으로 구성해 접점을 다층화한다. 공용 공간은 바다를 향한 전면을 벽 대신 기둥으로만 구성하고 모래사장 위에 좌석을 배치해 여행의 시간이 자연과 하나의 풍경을 이루게 했으며 나뭇가지를 촘촘하게 엮은 듯한 지붕과 벽, 짙은색 목재, 돌, 등나무, 종이 등으로 공간을 채워 자연과 공명한다.
해안선을 따라 자리 잡은 개별 숙소는 Land Villa, 침실 세 개로 구성된 Hospitality Villa, 물 위에 띄운 Water Villa 등으로 유형을 나눠 다양한 필요를 충족하고, 객실에 바다나 녹지와 맞닿는 테라스를 널찍하게 조성한 뒤 완전히 개방 가능한 통창을 설치해 외부로 한없이 뻗어나갈 듯한 기분을 선사한다. 또한 단순한 선에 부드러운 흙빛, 회색을 입혀 차분한 안식의 분위기를 그렸으며 나무, 리넨 등이 소박한 감성을 더한다.
YellowSquare Florence
Design / Piera ttelli Archi tetture
Location / Viale Francesco Redi, 19, 50144 Firenze FI, Italy
Area / 5,000㎡
Photograph / Iuri Niccolai
홀로 떠난 여행지에서 만난 새로운 인연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법이다. 전혀 다른 배경에서 자라온 사람들과 어색한 언어로 각자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고정관념이 깨지고 스스로의 세계가 넓어지는 기분마저 든다. 색다른 맛집과 명소도 좋지만 이런 소소한 만남과 깨달음이 모였을 때 그 여행의 기억은 더욱 뜻깊게 간직된다. 이에 숙박 업소도 다양한 사교 프로그램을 제안하고 있다. 오랜 시간 한 장소에 머무르는 숙소의 장점을 살린 것으로 다인실 비중이 높은 게스트하우스나 호스텔에서 이러한 움직임이 두드러진다. 정기적으로 방문객이 모두 모일 수 있는 파티를 여는 일은 물론 더욱 캐주얼한 어울림이 가능하도록 식당, 바, 루프탑과 같은 공용 공간을 늘리고 활발한 교류를 위해 운동, 교육 등의 배움 프로그램을 기획하기도 한다. 나아가 지역민과도 연결하고자 부대 시설을 개방하고 지역의 대표적인 산업을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선보이는 경우도 눈에 띈다.
르네상스 시대 예술이 꽃피던 도시 피렌체. 그곳에 자리한 YellowSquare Florence는 밝고 활기찬 분위기로 자연스러운 만남의 바탕을 만든 호스텔이다. 20년 전 처음 문을 연 숙박 전용 프랜차이즈 YellowSquare는 관광객이 지역 주민과 만나고 연결되는 거점이 되도록 노력해왔다. 새로 오픈한 YellowSquare Florence에서도 다양한 사람들의 교류를 위해 12개의 개인실 외에는 모두 4인 이상의 다인실로 구성한 뒤 충분한 공유 공간을 확보했다. 공유 주방과 레스토랑, 바, 지하 클럽은 물론 옥외 수영장, 선테라스, 뒷마당 등의 야외 좌석까지 호스텔 곳곳에 커뮤니티 공간을 마련함으로써 숙박객이 모여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도록 유도했다. 다양한 프로그램도 주목할 만한데 일몰 시간에 맞춰 야외 요가를 즐기거나 공유 주방을 활용한 요리 세션 등 여러 분야의 활동을 통해 취향이 맞는 사람들이 교류를 시작할 계기를 제공하고자 했다. 디자인도 활발한 소통이 이뤄지는 공간 특성에 맞춰 통통 튀는 색과 패턴으로 역동적인 분위기를 표현했다. 흰색의 담백한 외관과는 달리 1층에 들어서면 빨강, 파랑, 초록의 다채로운 색상이 눈길을 사로잡는데 기하학적 패턴을 컬러풀하게 칠한 바닥, 벽면을 장식한 페인팅 작품이 젊고 장난스러운 이미지를 가미한다. 천장 역시 노출한 구조물 위로 푸른색 메시망을 설치해 인더스트리얼하지만 팝한 인상을 더해준다. 객실은 쾌적한 분위기를 위해 진입하는 복도 천장에 흡음재를 사용했으며 층마다 초록, 주황, 파랑 등의 컬러를 칠해 발랄한 인상을 이어갔다. 커다란 사선 무늬가 이어지듯 천장과 벽을 연결해 색을 입혔으며 객실 내부에도 같은 색으로 포인트를 주었다. 다만 톤을 다양하게 변주했는데 벽과 천장을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듯 밝은 톤을 입히고 가구에는 톤 다운된 색감을 칠한뒤 화장실에는 강한 광택의 타일을 사용해 단조로움을 피했다.
Clusive
Design / NAMELESS Architecture
Location / 강원도 인제군 상남면
Area / 4,428㎡(대지면적), 670㎡(연면적)
Photograph / 노경
현대인에게는 휴식을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 지친 하루를 견디고 다시금 일상을 이어 나갈 힘을 충전하는 일이 중요해진 것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여행을 떠나 스스로를 압박하던 요소에서 벗어나 온전한 여유를 누리고자 한다. 이에 선호하는 숙소의 모습도 변화하고 있는데 최근에는 타인의 방해 없이 프라이빗한 시간을 보장해주는 독채 스테이에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스테이는 각 지역만이 갖고 있는 특색을 담뿍 녹여낸 디자인으로 발길을 모으며 지역민의 삶이 담긴 구조와 소품으로 다른 사람의 일상을 살아보는 듯한 기분을 선사한다. 그중 산속 깊은 곳이나 도심과 멀리 떨어진 시골에 자리한 곳은 오롯이 휴식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 창을 넓게 내어 풍경을 실내로 들이고 돌, 나무 등 자연에서 온 소재를 적극 사용해 차분한 색감과 투박한 형태, 고유의 질감이 느껴지는 골조와 가구를 통해 안온한 쉼의 정서를 고조한다. 사색을 위한 프로그램 역시 돋보이는데 명상실, 다도실, 작은 서재를 만들어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게 하거나 야외에 작은 모닥불을 피우고 나무가 가득한 산책로를 마련해 느긋함을 선물한다.
강원도의 굽이진 산길을 따라 가다 보면 계곡 옆 수풀 사이에 숨겨진 Clusive가 등장한다. 산맥 특유의 장엄한 풍경을 품은 Clusive는 웅장한 자연에 잠겨 고요한 하루를 만끽할 수 있는 스테이다. 설계를 담당한 NAMELESS Architecture는 바위가 오래도록 한 자리에 남아 땅의 장구한 역사를 보여주듯 달라지는 지역의 모습을 품은 공간을 꾸리고 커다란 바위 같은 건축물을 계획했다. 과한 형태나 색감을 배제하고 노출 콘크리트와 어두운 목재로 외관을 마감함으로써 대지와 풍경에 자연스럽게 녹아들도록 한 것이다. 총 네 개 동으로 구성된 Clusive는 넓은 정원을 중심으로 양 끝에 간격을 두고 자리해 있는데 띄엄띄엄 배치된 모습이 작은 마을을 연상시킨다. 각 동은 바위처럼 조금씩 다른 형태를 띠며 창의 방향 역시 제각각이라 특색있는 풍경을 실내에 들인다. 다채로운 휴식 콘텐츠를 마련한 점이 독특한데 동마다 편백침실, 코티지, 음악실, 갤러리로 콘셉트를 정해 머무르는 일행이 취향에 따라 풍성한 휴식을 즐기게 했다. 그중 편백침실의 경우 편백 소재를 사용해 편안하고 따뜻한 색이 가득한 곳으로 피톤치드 특유의 상쾌한 향이 코끝을 자극한다. 커다란 침대와 데이 베드로 아늑함을 고조했으며 바깥 풍경과 함께 족욕할 수 있는 작은 욕조를 마련해 여유롭다. 돌담으로 둘러싼 코티지 동은 쉼에만 몰입하도록 가장 안쪽에 배치해 더욱 프라이빗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내부는 뉴트럴한 색감으로 정돈했으며 침실 바로 옆에 다도실을 만들어 침엽수가 우거진 풍경 속에서 고요히 사색에 잠기도록 도왔다. 음악당은 전문적인 음향 시설을 통해 풍부한 청각적 자극을 선물한다. 통창 맞은편 벽에 커다란 스피커를 설치하고 천장 중간에 넓은 스크린을 숨겨 다양한 영상과 음향 효과를 즐기도록 했으며 더욱 안정적인 소리를 위해 목재로 내부를 마감했다. 또한 한쪽 벽 가득 수납장을 짜 넣고 다도 용품과 책, 잡지 등을 배치해둠으로써 중앙 소파에 앉아 영상이나 풍경을 바라보며 여유를 누리게 했다. 자연과 예술 모두를 향유하는 갤러리 동은 한쪽벽의 통창으로 들어오는 푸른 숲과 모던하게 정돈된 내부가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아무런 장식이 없는 흰 벽 위로 예술 작품만을 걸어 시선의 방향을 유도한 것이다. 가구는 짙은 톤 우드를 사용하고 침실과 욕실 쪽에는 광택 도는 회색 타일을 혼용해 바위 같은 인상을 전함으로써 창밖 자연과의 연계성을 높였다.
Buckle Street Studios
Design / Grzywinski + Pons
Location / London, UK
Area / 3,620㎡
Photograph / Nicholas Worley
팬데믹이 선사한 가장 큰 변화는 재택근무에 대한 인식이 아닐까. 휴식 공간으로만 여겨지던 집이 능률적으로 일할 수 있는 사무실로 거듭나면서 사람들은 집이 아닌 다른 공간의 가능성에도 집중하기 시작했다. 특히 일과 여행을 결합하는 흐름에 주목할 만하다. 한달 살기 등 관광보다 새로운 장소에서 느긋이 본래의 일상을 유지하려는 사람이 많아지는 모습이 업무 환경 변화와 만나 일과 휴가를 동시에 즐기는 워케이션(Work+vacation)이 각광받는 것이다. 숙박 업계에서도 흐름을 받아들여 공용 업무 공간과 회의실은 물론, 객실 내 개인 업무 영역을 꾸리고 가벼운 미팅을 위해 일부 객실을 묶어 별도의 로비를 만들기도 한다. 또한 업무용 장비를 무료로 대여해주거나 출퇴근 일정에 맞춰 얼리 체크인, 레이트 체크아웃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하며 최근에는 재택근무를 진행하는 기업체와 협력한 거점 사무실이나 지역 사회의 잉여 공간을 활용한 업무 공간 등을 오픈하는 중이다.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한 호텔을 선보이는 브랜드 Locke가 최근 런던에 새로운 숙박 시설 Buckle Street Studios를 오픈했다. 총 13개 층에 걸쳐 있는 Buckle Street Studios는 업무와 휴식이 공존할 수 있도록 공용 공간을 다양한 업무 처리에 적합하게 꾸미고 객실 공간도 분할했다. 로비로 들어서면 메자닌 형식의 공간이 시선을 사로잡는데 이곳을 공동 작업 공간으로 꾸며 기존의 라이프스타일을 이어나가도록 했다. 다양한 좌석을 구성해 업무에 따라 적절한 공간을 선택할 수 있는데 공간 중앙에는 차분히 집중하는 분위기를 위해 석재와 메탈, 우드를 간결하게 다듬은 벤치와 테이블로 1, 2인 좌석을 꾸몄으며 서로 등을 댄 형태로 배치해 차분한 분위기를 고조했다. 안쪽에는 여럿이 모일 수 있는 좌석이 마련되었는데 한쪽에는 벽과 문으로 영역을 확실히 나눈 회의실을 마련하고 나머지는 통통한 실루엣과 노랑, 분홍, 민트, 주황 등 화려한 컬러의 가구로 자유로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업무가 끝난 후에는 일상 속 특별함을 찾도록 다채로운 문화 시설을 만들었다. 운동 시설인 Workout studio에서는 개인 운동 외에도 매주 무료 요가 세션과 인근 지역을 달리는 러닝 클럽을 운영하고 있으며 소매점 The Maker’ s Space를 통해 지속 가능성을 기반에 둔 지역 신진 아티스트들의 수공예품, 의류, 가정용품 등을 판매함으로써 투숙객이 현지 예술가와 교류하게 했다. 또한 새로운 지역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기분을 강조하고자 공용 공간은 지역민에게도 개방했으며, 일부 객실 역시 일반 주거처럼 거실, 침실, 업무 공간으로 구분하고 식기세척기나 세탁기 등의 생활 필수품을 갖춰 장기 투숙객의 편의를 도모했다.
THE IVENS HOTEL
Design / CRISTINA MATOS ATE LIER, LÁZARO ROSA-VIOLÁ
Location / Rua Capelo, 5. Lisbon, Portugal
Area / 8,000㎡
Photograph / Francisco Nogueira, Enric Vives-Rubio
근사하게 디자인된 공간에 대해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수식어 중 하나가 바로 ‘호텔 같은’ 이라는 말이다. 호텔은 단순히 타지에서 숙박하는 공간이 아니라 환대받는 느낌과 일상을 초월하는 기분을 선사해야 하는 공간이기에 사려깊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이고 시각적 요소에 힘을 쏟아 감각을 환기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호텔에서는 극도로 화려하거나 트렌디한 디자인을 만끽할 수 있는데 최근에는 단편적인 시각적 매혹을 넘어 디자인에 깊이를 더하는 경향이 나타나 흥미롭다. 시대를 초월해 사랑받는 아이코닉한 디자인의 정수를 공간 전체에 구현해 일종의 디자인 박물관 같은 풍경을 펼치는가 하면 유명 디자이너나 브랜드의 작품 세계와 철학을 밀도 높게 담아내 디자인을 총체적으로 경험하게 한다. 스토리텔링을 품은 디자인도 눈에 띈다. 호텔이 위치한 지역에 깃든 전설, 소설이나 영화 등 문화 콘텐츠의 이야기를 짜임새 있는 디자인으로 전개해 공간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다른 세계에 들어온 듯 환상적인 여행을 할 수 있다. 이렇게 내면을 채운 디자인은 방문객의 미적 안목을 향상시켜 일상 속 공간까지 더 아름답게 빚어내는 계기가 된다.
수평선이 세상의 끝이라고 믿던 시절, 존재하는지조차 알 수 없는 미지의 땅을 찾아 떠남으로써 새로운 세계를 연 사람들이 있다. 포르투갈의 THE IVENS HOTEL은 무모하지만 매혹적인 여정을 시도했던 탐험가들의 이야기를 디자인으로 승화해 상상력을 자극하고 여행자의 모험 정신을 이끌어내는 호텔이다. 탐험가 Roberto Ivens와 Hermenegildo Capelo의 이름을 딴 거리에 위치하는 점을 바탕으로 탐험이라는 주제를 구상했는데, 탐험의 정서를 표현한 컬러 팔레트를 펼치거나 당시 탐험의 목적지였던 아프리카와 연관된 패턴과 오브제를 활용했을 뿐 아니라 탐험가의 초상, 탐험가가 남긴 일지나 스케치를 더해 모험의 세계에 빠진 듯한 기분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공용 공간은 아르데코 스타일에 탐험 모티브를 조합해 낭만적이면서 이국적인 장면을 그렸다. 그중 리셉션은 농밀한 초록색, 벨벳으로 안락한 첫인상을 형성하는 한편 열대 우림 패턴의 바닥, 침팬지 조각상을 배치해 공간 전반의 주제를 암시했다. 로비의 중이층에 위치해 층고가 낮은 단점을 극복하고자 벽을 거울로 덮어 확장감을 주면서 신비롭게 마무리한 점도 매력적이다. 복도는 탐험지의 호수처럼 짙은 푸른색으로 물들였으며 레스토랑에 탐험가의 초상화를 걸어 주제를 다채롭게 발화했다. 객실 역시 탐험 모티브를 이어갔지만 담백하고 깔끔한 분위기로 변주해 방문객의 휴식을 평화롭게 보듬고자 했다. 흰 벽과 어두운색 헤링본 목제 바닥으로 다진 바탕 위에 리넨, 나무, 가죽 등 뉴트럴 톤의 천연 소재를 더해 공간의 숨을 잠재우는 한편, 천장이나 벽지에 은은한 톤의 열대 그림을 한 폭 가득 담아내거나 코끼리, 표범 등 사파리 동물을 장식 요소로 선택해 고유한 내러티브를 단단하게 구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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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y Again, Bon Voyage
다시 떠나는 여행
취재 한성옥, 최지은
여행이 돌아왔다.
여행을 잃어버린 동안 우리는 단 한 번도 여행을 잊지 않고 그리워하며 언젠가 다시 떠날 날을 상상했다.
스스로를 위로하고 정화하는 시간이든 낯선 사람을 만나며 나의 세상을 확장하는 시간이든, 오랜 기다림 끝의 여행은 마음으로 그리던 여행 그대로여야 할 것이다.
꿈꾸던 여행의 마중물이 되어줄 공간을 살펴보며 다시 떠날 준비를 해보자.
낭만과 설렘 대신 안전을 택할 수밖에 없던 지난 몇 년, 우리가 마음 놓고 떠날 수 있는 여행은 랜선 여행 정도였다. 매일 잠드는 침대에 그대로 누워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화면 너머 간접적으로만 접할 수 있던 먼 곳의 풍경. 때로는 선뜻 찾아가기 힘든 지역조차 쉽고 편하게 즐길 수 있어 흥미롭기도 했지만 결국 영상이 모두 끝난 뒤 남는 건 진짜 여행을 향한 갈망뿐이었다. 평소와 전혀 다른 경치뿐 아니라 바람결과 향기 등 오감으로 느끼는 그곳만의 분위기, 두 발로 골목길을 누비며 그리는 나만의 경로, 우연히 만난 사람과의 대화처럼 직접 떠날 때만 누릴 수 있는 여행의 묘미가 있는 것이다. 팬데믹이라는 초유의 사태 속에서 일상만큼이나 애타게 고대하던 여행. 코로나19가 엔데믹화 수순에 접어들면서 출입국 시 자가격리가 면제되고 입국 제한 조치도 풀려 드디어 여행이 본격적으로 재개되고 있다. 홈쇼핑 방송에서는 고가의 프리미엄 해외 여행 상품이 연일 매진을 기록하고 여행사들은 3년 만에 정기 공채를 진행하거나 여행 전문 브랜드를 새롭게 론칭하며 지역마다 각종 대면 행사를 추진하는 등 여행 업계 전반에 활기가 도는 중이다. 여름 휴가철이 다가오면서 여행에 대한 기대감은 점점 고조되는데, 설령 바로 떠나지는 못한다 해도 여행을 계획하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일상의 공기가 산뜻해지는 기분이다.그동안 그리워하던 여행을 생각해본다. 이국에서 현지인과 소통하고 새로운 문화를 경험하는 시간, 광활한 바다나 깊은 숲을 온전히 마주하며 어지러운 삶을 가다듬는 시간, 낯선 세계에서 영감을 얻고 창의성을 고취하는 시간. 사람들의 성향이나 가치관에 따라 여행의 방식도 천차만별이고 여행이 삶에 주는 의미도 달라진다. 그리고 한 사람의 여행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바로 숙소이다. 호텔, 스테이, 호스텔, 게스트 하우스, 에어비앤비 등 어떤 숙소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여행의 지향점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각각의 숙소마다 단순히 조식, 독립적으로 쉴 공간 등을 제공하는 단계를 넘어 고유의 특색을 추구하고 있어 숙소를 보면 그 사람이 꿈꾸는 여행은 물론이고, 더 나아가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과 가치까지 알 수 있다. 호텔은 호화로운 시설과 환대를 넘어 공용 공간을 넉넉히 마련하고 지역민이 일상적으로 드나들 수 있는 구역을 연계해 커뮤니티를 극대화하거나 집과 유사한 환경을 유지하면서 감각적인 디자인을 품어 일상의 흐름을 색다르게 이어간다. 독립성이 강조되는 스테이도 자연 깊은 곳에 자리하되 쉼을 향유할 수 있는 다양한 시설을 품거나 취향이 또렷한 누군가의 집처럼 꾸며 다른 사람의 일상을 살아보는 듯한 경험을 선사하며 여행의 의미를 심화한다. 여행의 다채로운 결을 풍부하게 머금은 숙소에서 꿈꾸던 여행이 현실이 된다.
patina maldives
Architecture / studio mk27
Interior Design / studio mk27
Landscape Design / Vladimir Djurovic Landscape Architects
Location / Maldives
Area / 34,500㎡
Photograph / Fernando Guerra, George Roske
때때로 사람들은 진정한 나를 찾고 싶어 한다. 물론 ‘나’ 는 지금 이곳에 존재하지만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활동, 사회적 제약, 필요에 의한 관계에 얽매여 살다 보면 자신의 진짜 모습이 발현되기 힘들기 때문이다. 여행의 의의 중 하나는 속박에서 벗어나 자신의 내면을 만나는 기회가 된다는 점이 아닐까. 특히 문명과 단절된 듯 푸르게 존재하는 숲과 바다는 자연을 향한 여행이기도 하지만 나 자신을 마주하는 여행이 되기도 한다. 태초의 모습을 간직한 자연 속에서 본연의 나를 찾고 해방감과 내적 충만감을 만끽할 수 있는 것이다. 이에 심원한 자연 깊숙이 들어가는 숙소가 등장하는데, 유적한 산속에 침대 하나만 두거나 절벽에 매달린 숙소, 해저 호텔 등 실험적인 시도까지 나타난다. 다만 일반적 여행에서는 안락함과 자연을 모두 누리게 하는 시도가 주를 이루며 숲속에 침실과 욕실 등을 갖춘 독채 숙소를 배치하면서 전면을 투명 소재로 덮거나 내외부의 경계를 흐려 풍경속으로 뛰어드는 듯한 감각을 선사하고 원시림을 탐방하거나 야생동물을 관찰하는 프로그램 등을 제안한다. 자연 속에서 내면을 들여다보는 명상 프로그램을 준비하거나 순수한 마음으로 타인과 진정한 소통을 꾀하는 상호 교류 환경을 조성해 본연의 나로 세상과 다시 관계 맺도록 이끈다.
천혜의 자연 환경을 지닌 몰디브. 그 안에서도 외진 곳에 자리해 청정한 자연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Fari 군도에 patina maldives가 살며시 깃들었다. patina maldives는 문명을 벗어나 자연을 깊이 느끼도록 계획한 리조트로 섬 둘레를 따라 시설을 넓게 퍼뜨리면서 높이를 낮춰 수평선 등 풍경을 해치지 않도록 하고 건물 내외부의 경계를 흐려 시야를 열었다. 방문객은 울창한 초목 사이를 거닐거나 아득히 펼쳐지는 바다를 보며 자연과 교감하고, 그 시간 속에서 사회적 굴레를 벗어나 자신의 본 모습을 찾게 된다. 더 나아가 자연에서의 시간을 고립으로만 정의하지 않고 순수한 인간성을 되찾은 채 타인과 연결되도록 교류를 촉진하는 시설에 힘을 실은 점이 돋보인다. 섬으로 들어오는 선착장 오른쪽에 공용 공간인 Fari Marina Village를 배치했는데 이곳은 Fari Beach Club을 비롯해 베이커리나 철판 요리집 등 다양한 식음 공간, 꽃집, 상점, 스포츠 클럽, 갤러리까지 다채로운 시설로 구성돼 리조트를 하나의 마을처럼 묶으며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릴 기회를 만들어준다. 선착장 왼쪽에 위치한 본관 역시 리셉션 로비 역할을 하는 Arrival Green House, 식음 공간, 퍼걸러, 수영장으로 구성해 접점을 다층화한다. 공용 공간은 바다를 향한 전면을 벽 대신 기둥으로만 구성하고 모래사장 위에 좌석을 배치해 여행의 시간이 자연과 하나의 풍경을 이루게 했으며 나뭇가지를 촘촘하게 엮은 듯한 지붕과 벽, 짙은색 목재, 돌, 등나무, 종이 등으로 공간을 채워 자연과 공명한다.
해안선을 따라 자리 잡은 개별 숙소는 Land Villa, 침실 세 개로 구성된 Hospitality Villa, 물 위에 띄운 Water Villa 등으로 유형을 나눠 다양한 필요를 충족하고, 객실에 바다나 녹지와 맞닿는 테라스를 널찍하게 조성한 뒤 완전히 개방 가능한 통창을 설치해 외부로 한없이 뻗어나갈 듯한 기분을 선사한다. 또한 단순한 선에 부드러운 흙빛, 회색을 입혀 차분한 안식의 분위기를 그렸으며 나무, 리넨 등이 소박한 감성을 더한다.
YellowSquare Florence
Design / Piera ttelli Archi tetture
Location / Viale Francesco Redi, 19, 50144 Firenze FI, Italy
Area / 5,000㎡
Photograph / Iuri Niccolai
홀로 떠난 여행지에서 만난 새로운 인연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법이다. 전혀 다른 배경에서 자라온 사람들과 어색한 언어로 각자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고정관념이 깨지고 스스로의 세계가 넓어지는 기분마저 든다. 색다른 맛집과 명소도 좋지만 이런 소소한 만남과 깨달음이 모였을 때 그 여행의 기억은 더욱 뜻깊게 간직된다. 이에 숙박 업소도 다양한 사교 프로그램을 제안하고 있다. 오랜 시간 한 장소에 머무르는 숙소의 장점을 살린 것으로 다인실 비중이 높은 게스트하우스나 호스텔에서 이러한 움직임이 두드러진다. 정기적으로 방문객이 모두 모일 수 있는 파티를 여는 일은 물론 더욱 캐주얼한 어울림이 가능하도록 식당, 바, 루프탑과 같은 공용 공간을 늘리고 활발한 교류를 위해 운동, 교육 등의 배움 프로그램을 기획하기도 한다. 나아가 지역민과도 연결하고자 부대 시설을 개방하고 지역의 대표적인 산업을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선보이는 경우도 눈에 띈다.
르네상스 시대 예술이 꽃피던 도시 피렌체. 그곳에 자리한 YellowSquare Florence는 밝고 활기찬 분위기로 자연스러운 만남의 바탕을 만든 호스텔이다. 20년 전 처음 문을 연 숙박 전용 프랜차이즈 YellowSquare는 관광객이 지역 주민과 만나고 연결되는 거점이 되도록 노력해왔다. 새로 오픈한 YellowSquare Florence에서도 다양한 사람들의 교류를 위해 12개의 개인실 외에는 모두 4인 이상의 다인실로 구성한 뒤 충분한 공유 공간을 확보했다. 공유 주방과 레스토랑, 바, 지하 클럽은 물론 옥외 수영장, 선테라스, 뒷마당 등의 야외 좌석까지 호스텔 곳곳에 커뮤니티 공간을 마련함으로써 숙박객이 모여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도록 유도했다. 다양한 프로그램도 주목할 만한데 일몰 시간에 맞춰 야외 요가를 즐기거나 공유 주방을 활용한 요리 세션 등 여러 분야의 활동을 통해 취향이 맞는 사람들이 교류를 시작할 계기를 제공하고자 했다. 디자인도 활발한 소통이 이뤄지는 공간 특성에 맞춰 통통 튀는 색과 패턴으로 역동적인 분위기를 표현했다. 흰색의 담백한 외관과는 달리 1층에 들어서면 빨강, 파랑, 초록의 다채로운 색상이 눈길을 사로잡는데 기하학적 패턴을 컬러풀하게 칠한 바닥, 벽면을 장식한 페인팅 작품이 젊고 장난스러운 이미지를 가미한다. 천장 역시 노출한 구조물 위로 푸른색 메시망을 설치해 인더스트리얼하지만 팝한 인상을 더해준다. 객실은 쾌적한 분위기를 위해 진입하는 복도 천장에 흡음재를 사용했으며 층마다 초록, 주황, 파랑 등의 컬러를 칠해 발랄한 인상을 이어갔다. 커다란 사선 무늬가 이어지듯 천장과 벽을 연결해 색을 입혔으며 객실 내부에도 같은 색으로 포인트를 주었다. 다만 톤을 다양하게 변주했는데 벽과 천장을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듯 밝은 톤을 입히고 가구에는 톤 다운된 색감을 칠한뒤 화장실에는 강한 광택의 타일을 사용해 단조로움을 피했다.
Clusive
Design / NAMELESS Architecture
Location / 강원도 인제군 상남면
Area / 4,428㎡(대지면적), 670㎡(연면적)
Photograph / 노경
현대인에게는 휴식을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 지친 하루를 견디고 다시금 일상을 이어 나갈 힘을 충전하는 일이 중요해진 것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여행을 떠나 스스로를 압박하던 요소에서 벗어나 온전한 여유를 누리고자 한다. 이에 선호하는 숙소의 모습도 변화하고 있는데 최근에는 타인의 방해 없이 프라이빗한 시간을 보장해주는 독채 스테이에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스테이는 각 지역만이 갖고 있는 특색을 담뿍 녹여낸 디자인으로 발길을 모으며 지역민의 삶이 담긴 구조와 소품으로 다른 사람의 일상을 살아보는 듯한 기분을 선사한다. 그중 산속 깊은 곳이나 도심과 멀리 떨어진 시골에 자리한 곳은 오롯이 휴식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 창을 넓게 내어 풍경을 실내로 들이고 돌, 나무 등 자연에서 온 소재를 적극 사용해 차분한 색감과 투박한 형태, 고유의 질감이 느껴지는 골조와 가구를 통해 안온한 쉼의 정서를 고조한다. 사색을 위한 프로그램 역시 돋보이는데 명상실, 다도실, 작은 서재를 만들어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게 하거나 야외에 작은 모닥불을 피우고 나무가 가득한 산책로를 마련해 느긋함을 선물한다.
강원도의 굽이진 산길을 따라 가다 보면 계곡 옆 수풀 사이에 숨겨진 Clusive가 등장한다. 산맥 특유의 장엄한 풍경을 품은 Clusive는 웅장한 자연에 잠겨 고요한 하루를 만끽할 수 있는 스테이다. 설계를 담당한 NAMELESS Architecture는 바위가 오래도록 한 자리에 남아 땅의 장구한 역사를 보여주듯 달라지는 지역의 모습을 품은 공간을 꾸리고 커다란 바위 같은 건축물을 계획했다. 과한 형태나 색감을 배제하고 노출 콘크리트와 어두운 목재로 외관을 마감함으로써 대지와 풍경에 자연스럽게 녹아들도록 한 것이다. 총 네 개 동으로 구성된 Clusive는 넓은 정원을 중심으로 양 끝에 간격을 두고 자리해 있는데 띄엄띄엄 배치된 모습이 작은 마을을 연상시킨다. 각 동은 바위처럼 조금씩 다른 형태를 띠며 창의 방향 역시 제각각이라 특색있는 풍경을 실내에 들인다. 다채로운 휴식 콘텐츠를 마련한 점이 독특한데 동마다 편백침실, 코티지, 음악실, 갤러리로 콘셉트를 정해 머무르는 일행이 취향에 따라 풍성한 휴식을 즐기게 했다. 그중 편백침실의 경우 편백 소재를 사용해 편안하고 따뜻한 색이 가득한 곳으로 피톤치드 특유의 상쾌한 향이 코끝을 자극한다. 커다란 침대와 데이 베드로 아늑함을 고조했으며 바깥 풍경과 함께 족욕할 수 있는 작은 욕조를 마련해 여유롭다. 돌담으로 둘러싼 코티지 동은 쉼에만 몰입하도록 가장 안쪽에 배치해 더욱 프라이빗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내부는 뉴트럴한 색감으로 정돈했으며 침실 바로 옆에 다도실을 만들어 침엽수가 우거진 풍경 속에서 고요히 사색에 잠기도록 도왔다. 음악당은 전문적인 음향 시설을 통해 풍부한 청각적 자극을 선물한다. 통창 맞은편 벽에 커다란 스피커를 설치하고 천장 중간에 넓은 스크린을 숨겨 다양한 영상과 음향 효과를 즐기도록 했으며 더욱 안정적인 소리를 위해 목재로 내부를 마감했다. 또한 한쪽 벽 가득 수납장을 짜 넣고 다도 용품과 책, 잡지 등을 배치해둠으로써 중앙 소파에 앉아 영상이나 풍경을 바라보며 여유를 누리게 했다. 자연과 예술 모두를 향유하는 갤러리 동은 한쪽벽의 통창으로 들어오는 푸른 숲과 모던하게 정돈된 내부가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아무런 장식이 없는 흰 벽 위로 예술 작품만을 걸어 시선의 방향을 유도한 것이다. 가구는 짙은 톤 우드를 사용하고 침실과 욕실 쪽에는 광택 도는 회색 타일을 혼용해 바위 같은 인상을 전함으로써 창밖 자연과의 연계성을 높였다.
Buckle Street Studios
Design / Grzywinski + Pons
Location / London, UK
Area / 3,620㎡
Photograph / Nicholas Worley
팬데믹이 선사한 가장 큰 변화는 재택근무에 대한 인식이 아닐까. 휴식 공간으로만 여겨지던 집이 능률적으로 일할 수 있는 사무실로 거듭나면서 사람들은 집이 아닌 다른 공간의 가능성에도 집중하기 시작했다. 특히 일과 여행을 결합하는 흐름에 주목할 만하다. 한달 살기 등 관광보다 새로운 장소에서 느긋이 본래의 일상을 유지하려는 사람이 많아지는 모습이 업무 환경 변화와 만나 일과 휴가를 동시에 즐기는 워케이션(Work+vacation)이 각광받는 것이다. 숙박 업계에서도 흐름을 받아들여 공용 업무 공간과 회의실은 물론, 객실 내 개인 업무 영역을 꾸리고 가벼운 미팅을 위해 일부 객실을 묶어 별도의 로비를 만들기도 한다. 또한 업무용 장비를 무료로 대여해주거나 출퇴근 일정에 맞춰 얼리 체크인, 레이트 체크아웃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하며 최근에는 재택근무를 진행하는 기업체와 협력한 거점 사무실이나 지역 사회의 잉여 공간을 활용한 업무 공간 등을 오픈하는 중이다.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한 호텔을 선보이는 브랜드 Locke가 최근 런던에 새로운 숙박 시설 Buckle Street Studios를 오픈했다. 총 13개 층에 걸쳐 있는 Buckle Street Studios는 업무와 휴식이 공존할 수 있도록 공용 공간을 다양한 업무 처리에 적합하게 꾸미고 객실 공간도 분할했다. 로비로 들어서면 메자닌 형식의 공간이 시선을 사로잡는데 이곳을 공동 작업 공간으로 꾸며 기존의 라이프스타일을 이어나가도록 했다. 다양한 좌석을 구성해 업무에 따라 적절한 공간을 선택할 수 있는데 공간 중앙에는 차분히 집중하는 분위기를 위해 석재와 메탈, 우드를 간결하게 다듬은 벤치와 테이블로 1, 2인 좌석을 꾸몄으며 서로 등을 댄 형태로 배치해 차분한 분위기를 고조했다. 안쪽에는 여럿이 모일 수 있는 좌석이 마련되었는데 한쪽에는 벽과 문으로 영역을 확실히 나눈 회의실을 마련하고 나머지는 통통한 실루엣과 노랑, 분홍, 민트, 주황 등 화려한 컬러의 가구로 자유로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업무가 끝난 후에는 일상 속 특별함을 찾도록 다채로운 문화 시설을 만들었다. 운동 시설인 Workout studio에서는 개인 운동 외에도 매주 무료 요가 세션과 인근 지역을 달리는 러닝 클럽을 운영하고 있으며 소매점 The Maker’ s Space를 통해 지속 가능성을 기반에 둔 지역 신진 아티스트들의 수공예품, 의류, 가정용품 등을 판매함으로써 투숙객이 현지 예술가와 교류하게 했다. 또한 새로운 지역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기분을 강조하고자 공용 공간은 지역민에게도 개방했으며, 일부 객실 역시 일반 주거처럼 거실, 침실, 업무 공간으로 구분하고 식기세척기나 세탁기 등의 생활 필수품을 갖춰 장기 투숙객의 편의를 도모했다.
THE IVENS HOTEL
Design / CRISTINA MATOS ATE LIER, LÁZARO ROSA-VIOLÁ
Location / Rua Capelo, 5. Lisbon, Portugal
Area / 8,000㎡
Photograph / Francisco Nogueira, Enric Vives-Rubio
근사하게 디자인된 공간에 대해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수식어 중 하나가 바로 ‘호텔 같은’ 이라는 말이다. 호텔은 단순히 타지에서 숙박하는 공간이 아니라 환대받는 느낌과 일상을 초월하는 기분을 선사해야 하는 공간이기에 사려깊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이고 시각적 요소에 힘을 쏟아 감각을 환기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호텔에서는 극도로 화려하거나 트렌디한 디자인을 만끽할 수 있는데 최근에는 단편적인 시각적 매혹을 넘어 디자인에 깊이를 더하는 경향이 나타나 흥미롭다. 시대를 초월해 사랑받는 아이코닉한 디자인의 정수를 공간 전체에 구현해 일종의 디자인 박물관 같은 풍경을 펼치는가 하면 유명 디자이너나 브랜드의 작품 세계와 철학을 밀도 높게 담아내 디자인을 총체적으로 경험하게 한다. 스토리텔링을 품은 디자인도 눈에 띈다. 호텔이 위치한 지역에 깃든 전설, 소설이나 영화 등 문화 콘텐츠의 이야기를 짜임새 있는 디자인으로 전개해 공간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다른 세계에 들어온 듯 환상적인 여행을 할 수 있다. 이렇게 내면을 채운 디자인은 방문객의 미적 안목을 향상시켜 일상 속 공간까지 더 아름답게 빚어내는 계기가 된다.
수평선이 세상의 끝이라고 믿던 시절, 존재하는지조차 알 수 없는 미지의 땅을 찾아 떠남으로써 새로운 세계를 연 사람들이 있다. 포르투갈의 THE IVENS HOTEL은 무모하지만 매혹적인 여정을 시도했던 탐험가들의 이야기를 디자인으로 승화해 상상력을 자극하고 여행자의 모험 정신을 이끌어내는 호텔이다. 탐험가 Roberto Ivens와 Hermenegildo Capelo의 이름을 딴 거리에 위치하는 점을 바탕으로 탐험이라는 주제를 구상했는데, 탐험의 정서를 표현한 컬러 팔레트를 펼치거나 당시 탐험의 목적지였던 아프리카와 연관된 패턴과 오브제를 활용했을 뿐 아니라 탐험가의 초상, 탐험가가 남긴 일지나 스케치를 더해 모험의 세계에 빠진 듯한 기분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공용 공간은 아르데코 스타일에 탐험 모티브를 조합해 낭만적이면서 이국적인 장면을 그렸다. 그중 리셉션은 농밀한 초록색, 벨벳으로 안락한 첫인상을 형성하는 한편 열대 우림 패턴의 바닥, 침팬지 조각상을 배치해 공간 전반의 주제를 암시했다. 로비의 중이층에 위치해 층고가 낮은 단점을 극복하고자 벽을 거울로 덮어 확장감을 주면서 신비롭게 마무리한 점도 매력적이다. 복도는 탐험지의 호수처럼 짙은 푸른색으로 물들였으며 레스토랑에 탐험가의 초상화를 걸어 주제를 다채롭게 발화했다. 객실 역시 탐험 모티브를 이어갔지만 담백하고 깔끔한 분위기로 변주해 방문객의 휴식을 평화롭게 보듬고자 했다. 흰 벽과 어두운색 헤링본 목제 바닥으로 다진 바탕 위에 리넨, 나무, 가죽 등 뉴트럴 톤의 천연 소재를 더해 공간의 숨을 잠재우는 한편, 천장이나 벽지에 은은한 톤의 열대 그림을 한 폭 가득 담아내거나 코끼리, 표범 등 사파리 동물을 장식 요소로 선택해 고유한 내러티브를 단단하게 구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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