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 시작되는 곳 - 나의 작은 집 (2021.1)

행복이 시작되는 곳
나의 작은 집 

취재 신은지, 한성옥

아무리 작더라도 내 일상을 든든히 지켜줄 집을 사랑하는 마음은 소박하고 평범한 삶에 대한 긍정으로 이어진다.
작은 집에서 누리는 소소하지만 따스한 일상. 바로 행복이 시작되는 곳이다.

세상은 무척 넓지만 가질 수 있는 것은 많지 않고, 그마저도 온전한 내 것은 없다. 어쩌면 거대한 이 세상에 비해 아주 작디작은 몸 하나만이 자신의 전부다. 감염병으로 무너진 일상을 재건해나가며 많은 이들이 툭 하면 사라질 외부의 즐거움이 아니라 변하지 않고 삶을 지탱해줄 내적 행복이 어디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행복은 내 안에 있다는 흔한 말을 상기해본다. 이 말이 지루할 정도로 돌고 도는 이유는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기 때문이 아닐까. 재난이 휘몰아치고 불안이 엄습하는 이 시대에서 집은 그렇게 가장 온전한 행복의 공간이 됐다.
요즘 나만의 집을 갈망하는 이들은 부담스럽고 화려한 공간보다 작더라도 포근한 공간을 꿈꾼다. 현실적인 문제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전에는 작은 집이 좁고 불편하게 여겨질 뿐이었다면 지금은 내 손길이 더욱 온전히 배어들 수 있는 안전한 보금자리로서 의미가 커졌다. 불안한 사회 상황과 요동치는 부동산 시장 아래 큰 아파트를 무리하게 유지하기보다 작더라도 알차고 포근한 나만의 집을 꿈꾸는 것이다. 각종 제품 정보를 비롯해 셀프 인테리어 현장을 공유하는 리빙 플랫폼의 증가 역시 이러한 경향과 맞물린다. 원룸, 오피스텔 등 소규모 주거를 꾸미는 다양한 아이디어와 사례를 접하며 작은 집에 대한 편견을 허물어나가고, 비좁음이 아닌 아늑함으로 취향을 공간에 녹여낸다. 바쁘게 돌아가는 거대한 도시 속에서도 사소한 삶의 공간을 존중하는 노력이 지속된다. 작년 10월에 열린 서울건축문화제는 틈새 건축을 주제로 삼아 도시재생으로 재탄생한 공간이나 작은 부지를 되살린 협소주택에 주목했으며, 이슈가 됐던 한양도성 옆 협소주택 세로로가 건축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협소주택부터 도시형 주거까지, 불안정한 사회 구조에 영민하게 대처하는 동시에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공간 가능성을 극대화한 작은 집. 더 큰 삶을 향해 나아가는 작은 집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공간 기능성을 집약하다
Rattan in Concrete Jungle

Design / Absence from Island·Tang Chi Chun
Location / Hong Kong, China
Area / 40㎡
Photograph / Chi+Ireen Sit

Who live in?
인구가 과밀한 홍콩에서 살아가는 3인 가족. 어린아이가 있어 넉넉한 수납 공간과 자유롭게 놀 수 있는 트인 구조가 필요했으며, 좁더라도 편안하고 따스한 보금자리를 꿈꿨다.

작은 평면이 빽빽이 늘어선 잿빛 아파트 사이, 포근한 빛으로 움튼 공간. 좁은 공간일수록 한 끗 차이가 큰 힘을 발휘한다. 부부와 아이가 살아가는 Rattan in Concrete Jungle 프로젝트는 약 12평의 협소한 공간을 꼼꼼히 활용함으로써 가족에게 소중한 보금자리를 선사한다. 아이와 함께 지내기 위해서는 효율적인 구성과 편안한 감성을 고루 갖추는 것이 관건으로, 아이의 자유로운 활동을 수용하면서 많은 생활용품을 합리적으로 수납하고 가족 모두 정서적으로 안정감 있게 성장하는 집이 필요했다. 이에 디자이너는 모든 벽에 수납 기능을 심어 기능성을 끌어올리는 동시에 면을 깔끔하고 넓게 연출해 아이가 뛰어놀도록 배려했다. 보통 홍콩에서는 가변형 가구 시스템으로 협소한 면적을 해결하지만 이는 사용하기 번거로울뿐더러 아이에게 위험해 간단한 이동식 가구만을 더했다. 무엇보다 화이트 톤 바탕에 모든 가구는 우드, 라탄으로 마감해 자연 감성과 안락한 분위기를 살렸다. 

▲ Point 1. 수납함으로 둘러싸인 공간
생활용품을 넉넉히 수납하기 위해 벽 전체를 가구화했다. 바닥부터 천장까지 다양한 크기의 수납함을 배치했는데, 현관문 위쪽까지 설치해 진입부를 구분하는 효과를 줬으며 수납함 높낮이를 조절해 벤치나 테이블로 활용한 점이 인상적이다. 답답한 느낌이 들지 않도록 밝은 우드에 가벼운 질감의 라탄을 적절히 혼용했다.

내부는 공용 공간과 부부 침실, 아이 방으로 간결하게 구성되는데, 거실겸 다이닝 공간은 창문을 제외한 모든 벽에 수납함을 설치하고 벤치까지 빌트인으로 제작해 짜임새 있다. 다이닝 테이블 역시 벽 안쪽에 수납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들어 공간을 넓게 활용했으며, 벽 중앙에 있었던 욕실 문을 주방 문 옆으로 옮겨 유휴 영역을 최소화했다. 모든 벽면은 우드로 마감하되 찬장에는 라탄을 적용해 디자인 변주를 주면서 통풍 효과를 냈다. 

부부 침실과 아이 방 역시 편안한 우드와 라탄으로 내추럴한 분위기를 이어간다. 부부 침실은 창가에 벽부형 벤치와 침대를 설치해 깔끔하며, 아이 방은 벽이 아니라 바닥에 수납함을 설치해 공간 폭을 유지하고 마루처럼 탁 트이게 연출했다.

Point 2.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은 바닥
아이의 놀이 영역을 충분히 확보하면서 수납 공간을 갖추기 위해 빌트인 시스템을 적용했다. 면적이 좁아 벽을 두껍게 하기 어려웠기에, 바닥에 단을 올리고 수납함을 설치했으며 손잡이로 작은 틈만내 표면을 정돈했다. 다른 집기를 추가하는 대신 비워둔 창가 영역에 기둥을 세우고 고정형 책상을 설치함으로써 공간이 넓어졌다.



도전하는 레이아웃
PH Paroissien

Design / Otto ne-Victo rica Arquit ectos
Location / Núñez, Ciudad Autónoma de Buenos Aires, Argentina
Area / 60㎡
Photograph / Pedro Yañez

Who live in?
교외의 넓은 집에서 도심의 작은 집으로 옮기게 된 30대 중반의 예술가 여성. 공간을 최대한 넓게 쓰면서 일상생활과 작품 활동을 병행하고자 했다.

20세기 초반에 지어진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PH Paroissien은 젊은 여성 예술가를 만나 유연한 삶의 터전으로 거듭난 주거다. 교외에서 도심으로 이주하게 된 거주자는 언제든 하늘을 바라볼 수 있고 빛이 풍부하게 유입되는 집을 꿈꿨다. 또한 점성술을 연구하고 식물을 모티브로 수공예 작품을 만드는 예술가로서 아틀리에를 별도로 마련하기보다는 집에서 작업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고자 했다. 넓지않은 면적에 거주자의 라이프스타일을 풀어내야 했던 디자이너는 가변성이 뛰어난 강철 구조물을 고안해 다양한 조건에 탄력적으로 대응하는 공간을 만들었다.

담장과 건물 사이 빈 공간을 파티오로 활용한 점이 특징으로, 투명 창을 지붕처럼 덮고 담장을 연장한 형태로 회전형 창을 설치해 실내외의 성격이 한데 어우러진다. 파티오와 내부는 강철 구조물에 접이식 창을 결합해 구획했는데 창을 옆으로 밀어놓으면 내외부의 경계가 흐려져 공간 전체를 순환하는 흐름을 빚는다. 파티오 한편에도 동일한 시스템을 시공해 주방을 마련했으며 구조물 위에 불투명 유리를 이어 붙여 자칫 차가울 수 있는 소재 조합에 온화함이 깃들었다. 침실 겸 아틀리에 역할을 하는 내부는 벽체 없이 공간을 통합해 일과 삶을 조화롭게 결합했으며 벽과 천장을 모두 하얗게 칠하고 천장 일부에 긴 창을 내 밝게 마무리했다 .

 Point 1. 공간의 가능성을 이끌어내다
야외에 투명 창을 지붕과 담장처럼 설치해 실외와 실내, 어느쪽으로도 활용할 수 있는 유연한 구조를 만들었다. 유리로 둘러싸여 있지만 지붕이 높고 담장 쪽 창은 중앙을 축으로 회전하는 방식이라 막힌 느낌이 들지 않는다. 파티오와 내부는 접이식 창시스템으로 구획해 공간의 가능성을 확장했는데 창을 모두 열면 공간이 하나로 연결돼 파티오가 또 다른 거실이 된다.

▲ Point 2. 경계를 최소화한 집
일을 삶과 분리하지 않는 예술가의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해 벽을 없앤 내부. 침실과 아틀리에를 구분하되 벽체 일부만남겨 서로 소통할 수 있도록 했으며 바닥재를 달리해 시각적으로 차별화했다. 천장, 벽, 바닥부터 침대와 옷장까지 흰색으로 통일해 한결 넓어 보인다.



도시의 틈새를 파고들다
303 HOUSE

Design / sawadeesign
Location / Tan Binh district, HCMC, Vietnam
Area / 90㎡
Photograph / Quang Tran

Who live in?
시장 맞은편에 자리한 집에서 사는 3인 가족. 
항공업에 종사하다 은퇴한 엄마, 비행기 조종사인 아들, 딸이 함께 살며 낮에도 집에 머무르는 엄마를 위해 조용하고 밝은 집을 조성하고자 했다.

베트남의 도시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좁고 길며 도로와 바로 맞닿은 집. 호찌민에 위치한 303 HOUSE는 이러한 베트남주거의 특징을 여실히 보여주는 공간에 창의적 구조를 덧입히고 거주자의 삶을 모티브로 디자인을 펼쳐 유니크한 맞춤형 집으로 재탄생했다. 베트남에서 도로와 면한 집은 앞쪽 공간을 상점이나 사무실로 임대하고 안쪽에 주거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은퇴한 엄마와 성인 자녀가 함께 사는 이 집에서는 외부와 분리돼 온전히 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이에 디자이너는 대문을 지나 마당, 공용 공간, 침실로 이어지는 레이어링 구조를 고안해 외부의 소음과 먼지 등 이 휴식 공간까지 미치지 못하도록 했다. 

내부 폭이 2.7m에 불과한 공간을 가능한 한 넓게 활용하는 것도 관건이었는데, 일렬로 배열한 거실과 주방의 벽을 따라 수납장을 짜 넣어 기능을 집약하고 수납장과 연결된 가벽으로 침실을 분리해 효율적인 짜임새를 보인다. 디자이너가 이 구조를 구현하면서 효율성만큼이나 신경 쓴 부분은 거주자의 개성을 담아내는 일이었다. 항공업에 몸담았던 엄마와 비행기 조종사인 아들을 고려해 비행기 객실 느낌을 주고자 한 것이다. 이 모티브는 집의 경계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데, 리벳이 많이 박힌 스테인리스 스틸로 대문을 만들어 비행기를 표현했으며 그 위에는 Tan Son Nhat 공항 울타리와 유사한 철조망을 설치해 거주자에게 친근감을 전한다. 내부 천장도 인더스트리얼한 분위기로 눈길을 끈다. 사선으로 시공한 천장 패널은 냉장 창고에 주로 쓰이는 소재로 만들어 쾌적한 기온을 유지하며 플라스틱 패널을 교차 시공해 낮에도 자연광이 넉넉히 흘러든다. 안쪽에는 침실 세 개를 차례로 배치했으며 중간에 나무를 심은 릴랙스 존을 마련해 긴 공간 흐름에 쉼표를 찍었다.

▲ Point 1. 거주자의 삶을 압축한 풍경
엄마가 근무했던 항공사에서 비행사로 일하고 있는 아들. 항공업과 밀접한 관계를 맺은 가족의 특성을 고려해 공항과 비행기의 풍경을 집에 녹여냈다. 집의 경계는 공항과 비행기의 외관을 모티브로 디자인하고 내부는 비행기 객실에서 좌석 사이를 걷는 느낌이 들도록 계획했다.

▲ Point 2.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공간 분리
좁고 긴 구조에서 공용 공간과 침실을 구획하기 위해 가벽을 활용했는데, 벽체형 수납장을 연장한 가벽이 공간을 나누면서도 흐름을 매끄럽게 이어간다. 문은 큼직하게 내 폐쇄적인 느낌이 들지 않도록 신경 썼다. 가벽을 사선으로 설치하고 그 일부 공간에 화장실과 욕실을 배치해 효율성을 끌어올렸다.



마을과 소통하는 삶
House in UMEJIMA

Design / International Royal Architecture·Daisuke Tsunakawa, Akinori Kasegai
Location / Umejima, Adachiku, Tokyo, Japan
Area / 82㎡
Photograph / Nao Takahashi

Who live in?
사교적인 성격으로 다양한 경험을 즐기는 부부와 어린 자녀.
이들에게 집이란 일상의 에너지를 재충전하고 더 넓은 세상과 소통하는 창구다.

누군가는 집 안에서 홀로 머무르는 것을, 또 누군가는 오히려 사람들과 소통하며 여러 경험을 만끽하는 것을 휴식으로 여긴다. House in UMEJIMA에서 거주하는 가족은 환자와 직접 마주해 손으로 치료하는 카이로프랙틱(Chiropractic) 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는데, 사교적이라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듣기 좋아할 뿐 아니라 서핑처럼 다이내믹한 스포츠를 즐기는 활동적인 스타일이다. 유연하고 자유로운 성향을 지닌 이 가족에게 집은 정적인 휴식처이기보다 서로 즐거이 소통하며 다채롭게 활동하는 공간이었다. 이를 세심히 파악한 디자이너는 코너에 위치해 거리와 인접한 부지 형태를 고려하면서 가족의 성향을 반영한 열린 집을 완성했다. 

코너에 자리한 작은 사이트는 소방, 교통 등 규정상 안쪽 영역만을 건물 부지로 활용할 수 있었다. 먼저 기준선에 맞춰 벽면을 계단식으로 비스듬히 조정하고, 마을 도보와 건물 사이를 마당으로 활용해 공공과 개인 영역의 조화를 꾀했다. 벽이 계단처럼 꺾여 다양한 공간감을 형성하는 이곳은 주차장, 자전거 보관소, 식물과 벤치를 놓은 테라스 등으로 구성된다. 벽 곳곳을 열어 도보의 일부처럼 연출하고 마을 주민들이 편히 오가게 했다. 2층으로 이루어진 내부 역시 최대한 오픈했으며, 1층 현관으로 들어서면 가족 공간과 환자를 위한 트리트먼트 룸으로 동선이 나뉜다. 가족 공간은 주방과 거실을 최대한 넓게 통합하고 도보 쪽 벽에 큰 창을 낼 뿐 아니라 천창까지 마련해 화사하다. 프라이빗하게 구성한 2층은 긴 구조를 따라 개인 공간을 차례로 배치해 합리적으로 구획했으며 곳곳에 통창과 이어 진 창을 내 개방감을 유지했다.

▲ Point 1. 마을 쉼터가 된 테라스
도보와 집 사이에 마련한 반개방형 마당. 바닥은 단조차 두지 않고 도보와 동일한 높이로 다듬어 외부와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주민들이 편히 드나든다. 또 담장 없이 공간을 오픈했으며 벽 대신 넝쿨 식물이 자라도록 해 마을 풍경에 푸르른 생기를 심는다. 러프한 목재 프레임에 인더스트리얼한 패널을 얹은 비스듬한 천장으로 온실처럼 편안한 분위기다.

▲  Point 2. 사방으로 열린 거실과 주방
거실은 마을을 향해 열린 마당의 이미지를 끌어와 벽을 최소화하고 탁 트인 개방감을 강조했다. 현관에서 가족 공간과 트리트먼트 룸으로 동선이 나뉘지만 옆 벽을 유리로 구획해 오가는 이들을 마주할 수 있게 했다. 특히 현관문 외에도 주방 옆에 마당을 향한 슬라이드 도어를 만들거나 넓고 긴 창을 내는 등 공공과 개인의 영역을 과감하게 허문 점이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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